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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고
환경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다

 

 
 월명동 자연수련원의 작품형상석과 꽃들

  

본 설교는 2016년 6월 5일 정명석 선생의 설교를 핵심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선생이 새벽에 기도하고 ‘오늘은 어떤 말씀을 주시려나?’ 하고,
하나님과 성령께서 계시를 주시면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펜 끝’이 ‘내 몸’을 찔렀습니다.
따끔하여 놀라고 있을 때,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사람들도 ‘대하기’에 달려 있다.
볼펜 끝으로 대하면 찌르게 되고,
볼펜의 부드러운 쪽으로 대하면 찔러도 안 아프다.”


이 말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상대에게 ‘어떤 모순’이나 ‘고칠 것’이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볼펜 끝으로 대하듯 ‘날카롭게’ 대하여,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무서우니, 가까이 대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볼펜 옆면으로 대하듯 ‘부드럽게’ 대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하여 스스로 고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안 무섭고 부드러우니, 가까이 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며 행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 주의 이름을 이용하고 팔아서 믿게 하여 피해를 줍니다. 거짓이 ‘남’은 속이지만, ‘자기 양심’은 못 속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은 못 속입니다.


자기가 행한 일은 남은 다 몰라도 ‘자신’은 알듯,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아십니다.

성삼위께서는 ‘그 영’을 살리기 위해 꾸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꾸짖을 때는 볼펜 끝으로 대하듯 하기보다,
부드러운 쪽으로 대하듯 하며 ‘양심’으로 깨닫게 합니다.
다 속여도 ‘자기 양심’은 속이면 안 됩니다.
스스로 ‘양심’으로 깨닫고 꼭 고치고 소각해야 됩니다.


사람도 ‘대하기’에 달려 있고, 하나님도 ‘대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으로 대하는 것이냐고요? 자기 행위로 대하는 것입니다.

잘 대해 달라고만 하지 말고, 자기가 상대를 잘 대해야 상대도 잘 대합니다.

하나님께 축복만 달라고 하지 말고,
자기 온전한 행위로 하나님을 대해야 하나님도 주십니다.
대하는 대로 확실히 표가 납니다!

 

쓰레기도 ‘정리’만 하고 ‘소각’을 안 하면
그로 인해 오염되고, 각종 해충들이 생깁니다.
죄도 그러합니다. 반드시 ‘소각’해야 됩니다!

소각을 안 하면, 더러워서 하나님도 성령도 주도 가까이 못 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더러운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고로 항상 깨끗하게 하십니다.


계속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똑같은 그릇이 있어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 그릇은 이미 만들어졌으니
마음대로 ‘크게’ 할 수도 없고 ‘작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변을 받아서 버리는 요강’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물을 담아 채소밭에 물 주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약단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하기에 따라 ‘하찮게’, 혹은 ‘보다 귀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의 몸의 구조는 뜯어고칠 수 없습니다.
키가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인물이 덜하기도 하고, 잘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하고 쓰기’에 따라 운명이 좌우됩니다.
환경의 구조도 뜯어고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그대로밖에 살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하고 쓰기’에 따라 운명이 좌우됩니다.

작은 방도, 작은 집도, 작은 교회도 구조는 못 바꾸지만
‘대하고 쓰기’에 따라 운명이 좌우됩니다.

하나님은 잘생겼든 못생겼든 누가 ‘자기 몸’을 가장 귀히 쓰는지 보시고,
고통의 환경이든 좋은 환경이든 누가 ‘그 환경’을 가장 귀히 쓰는지 보십니다.

선생은 고통의 환경이라도 이 시대에 최고로 행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뜻을 세상에 펴는 데 썼습니다.

 

또 5만 번 이상 편지로 하나님과 성령과 성자의 뜻을 전해 줬고,
책으로 하면 150여 권이나 되는 하나님의 시대 말씀을 썼고,
4만 개 이상의 잠언을 썼습니다.

 

고통의 환경을 최고로 귀하게 대하고 쓴 것입니다!
내 몸을 최고로 귀하게 대하고 쓴 것입니다!

모두 자기 몸도, 생명들도, 자기 거처와 환경도, 교회도
그 모양과 구조가 어떠하든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하고 쓰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최고 좋은 운명’으로 바꾸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어떤 인생 그릇’입니까?
자기라는 인생 그릇은 ‘자기’가 쓰면 ‘작게’ 쓰기도 하지만, ‘육적’으로만 쓰고 끝나게 됩니다.

여기서 ‘육적으로 쓰고 끝난다.’ 함은 영적인 존재, 하나님이 쓰지 않으시니,
인간은 ‘육’인 고로 ‘육적’으로만 쓰이고 끝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육’으로 존재하기에 ‘육적’으로 흐릅니다.
고로 ‘영원한 세계, 영원히 사는 영, 영의 구원’을 생각지 않고,
‘그저 100년 후에 끝나면 육의 삶’만 생각하며 삽니다.

 

자기 혼과 영이 있어도 자기 혼과 영 자체로는
‘영원한 삶, 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라는 인생 그릇이 ‘영적’으로 쓰이고 ‘영원한 삶’을 얻으려면,
반드시 ‘영의 존재자, 영적으로 이끄는 자’가 이끌고 잡아당겨 줘야 됩니다.

곧 ‘하나님이 보낸 시대 사명자’와 연결되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로서 ‘육적’으로만 사용되다가 끝납니다.

이는 여자 혼자 ‘아기’를 못 낳는 격입니다.
돌포도나무 혼자 ‘참포도 열매’를 못 여는 격입니다.

 

모두 자기 몸을 ‘자기’가 써서 작게 육적으로만 쓰고 끝나지 말고,
삼위일체가 원하시는 대로 써서
크게 영적으로 영원히 귀히 쓰이고 영원히 사랑받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쳤습니다. 

 

jmsjmscgm@gmail.com

기독교복음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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